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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치도(治道)의 문제는 공자와 제자들의 중대한 관심 주제였으나, 불교에서 보면 이러한 치도의 문제는 세간법에 불과할 수 있다. 실제로 지욱은 『논어』 의 해석에서 치도와 관련된 여러 언급들을 가볍게 처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제자 자로가 위군 (衛君)이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부터 해야 하겠는가를 물었을 때 공자는 명분을 바로잡는 일 곧 '정명(正名)을 제시했던 일이 있고( 「子路」), 안연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爲邦]을 물었을 때, 공자는 하(夏)의 책력(時]을 쓰고 은(殷)의 수레를 타고, 주(周)의 면류관을 쓰는 등의 제도를 제시하였던 일이 있다(「衛靈公」). 이에 대해 지욱은 자신의 견해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전습록(傳習錄)』에서 왕양명의 견해를 길게 인용하는 것으로 넘어가 버린 것도 치도의 문제에 대한 해석에 적극적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지욱이 치도의 문제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불교적 논리에 의해 해명하는 독특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욱은 치도의 기본원리로서 치국의 근본이 자신에게 있다는 인식을 확인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자신을 닦는 ‘수기(修己)'가 치도의 기본방법임을 중시하고 있다. 자로의 질문에 답하면서 공자는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요·순도 근심했던 것이다 [隋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 諸](「憲問」)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지욱은 “시방세계를 다하는 것은 자기이니, 종횡으로 궁진하고 두루하며, 그 본체와 국량과 구비함이 모두 불가사의하다. 사람들이나 백성이란 자기중심이 한 터럭 끝에 드러낸 경계일 뿐이다.... 공자는 기(己)'라는 글자를 투철하게 알았으므로, ‘요·순도 근심했던 것이다'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며, 백성을 편안하게 여 길 수 없을까 근심한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를 닦음 [修己]이 극진한 자리 에까지 이르지 못할까를 근심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주자학의 도학 적 유교전통에서 ‘수기'를 수양의 문제로 ‘치인(治人)'을 치도의 문제로 구분하면서 양자를 본말(本末) 관계의 구조로 이해해 왔던 사실과 비교한다면, 지욱은 철저히 ‘수기'의 '기'를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치인의 영역을 ‘수기의 표출에 불과한 것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또한 공자가 “정치를 하는데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 자리에 머물지만 모든 별들이 떠받들며 돌고 있는 것과 같다[爲政以德, 홀 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爲政」)고 하였는데, 지욱은 먼저 '정치를 하는데 덕으로 하는 것[爲政以德]’과 ‘덕을 가지고 정치를 하는 것[以德 政]'을 구별하고 있다. 전자가 자신의 덕을 닦아서 정치를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덕이라는 규범체계를 끌어다가 정치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전자의 의미에 따르면 '자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남을 바르게 하는 [自正正 他] 정치의 방법이 올바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남을 바르게 하는 것은 모두 정치를 하는데 덕으로 하는 것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유교전통에서 정치원리를 법으로 다스리는 법치(法治)와 차별화하여 덕으로 다스리는 덕치(德治)를 표방하는 입장과는 달리, 다스림에 쓰이는 '덕이 안으로부터 자신의 덕을 닦은 것인가 아니면 밖으로부터 ‘덕'으로 통용되는 일반적 규범을 받아들이는 것인가를 엄격히 분별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지욱의 불교적 해석이 지닌 유심론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